[강동식 칼럼] 장애인 접근성, 선택사항이 아니다 <디지털타임즈 2011.05.08>

 한 국내 소프트웨어(SW) 기업이 최근 미국시장 진출을 추진하면서 겪은 일이다.

이 회사는 미국 연방정부의 조달시장 진입을 노렸지만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미국 연방정부와 소속기관의 조달 규정 중 하나인 재활법 508조를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8년 제정된 재활법 508조에 따라 가장 큰 소비처인 연방정부와 소속기관에서 구매하는 제품에 대해 접근성을 준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장애를 가진 연방정부 공무원과 민원인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장애인의 사용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한 SW 제품을 단기간에 수정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결국 훗날을 기약하게 됐다고 한다.

미국 주정부도 연방정부만큼은 아니지만 장애인 접근성과 관련한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해 활용하거나 기업이 자율적으로 접근성을 지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또 재활법 508조, 통신법 255조 등의 개정작업을 통해 접근성을 준수해야 하는 대상품목을 계속 늘려나가고 있다.

영국도 2005년 개정한 장애인 차별 금지법에 장애 평등 의무조항을 추가해 조달 구매 시 기본적으로 장애인 접근성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미국 등에서는 정부 공공시장에 제품을 공급하려는 기업에게 접근성 준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대상인 것이다.

지난주 한국을 찾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접근성 담당자인 보니 커니 이사는 기업이 접근성을 지켜야 하는 중요한 이유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도,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을 들었다. 접근성을 지키지 않을 경우 최대 시장인 미국 연방정부 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잃는다는 것은 기업에게 접근성을 준수하도록 하는 매우 중요한 동기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장애인 접근성 준수는 기업에게 새로운 사업기회를 얻거나 최소한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국내에서도 머지않아 현실화될 수 있다. 상황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2008년 제정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장차법)에 따라 단계적으로 웹사이트 접근성 준수의무가 부여되고 있다. 이미 공공기관, 종합병원, 공공도서관, 초ㆍ중ㆍ고와 대학 등은 웹 접근성 준수 적용대상이 됐다.

또 접근성 준수 의무 범위가 웹사이트에서 SW, 모바일 기기, ATM 기기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접근성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김석일 충북대 교수는 지난주 열린 웹 접근성 향상전략 세미나에서 현재 장차법이 웹 콘텐츠만을 접근성 준수 대상으로 의무화하고 정보통신 기기와 서비스의 경우 접근성을 권장하는데 그치고 있지만, 향후 장차법과 국가정보화기본법 개정을 통해 접근성 준수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기술표준원은 고령자와 장애인의 IT기기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UN총회 장애인 권리협약 채택, 장차법 제정 등 국내ㆍ외에서 장애인 및 고령자 접근성 관련 제도가 잇따라 마련되고, 국가적인 노령화 등으로 인해 장애인과 고령자의 IT기기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기술표준원은 연구 결과에 따라 IT기기 접근성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KS 제정도 추진할 생각이다.

접근성 준수 범위가 웹사이트 이외의 영역으로 넓어지는 시점을 점치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관련법이 마련돼 접근성 준수가 의무화된 뒤에 준비하려면 너무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기업 입장에서 혼란과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바로 준비에 나서는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면, 기업이 접근성 준수를 장애인에 대한 베풂으로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접근성 준수는 자신이 만든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위해 당연히 제공해야 할 서비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