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폰 고수다> 진행자 네 명. 왼쪽부터 이제승, 전영세, 권순철, 김동현.
네 남자가 골방에서 낄낄거린다. 때로는 "쫄지마 시바" 같은 욕설이 튀어나오고,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도 흘러나온다. 그런데 네 사람의 대화가 예상치 않다. 때로는 신랄하게 사회를 질타하고, 때로는 스마트한 세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다. <나는 꼼수다>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시각장애인 네 사람이 진행하는 <나도 폰 고수다>(이하 나폰수)의 방송 내용이다.
<나폰수> 진행자 네 사람은 모두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다. 이들은 시각장애인 누리집 아이프리(web.silwel.or.kr)의 동호회인 '스마트폰 세상'의 운영자들이다. 이들이 시각장애인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나도 폰 고수다>를 시작했는데, 그 반응이 매우 뜨겁다.
<나는 폰 고수다>를 아십니까
"<나폰수>의 '나'는 우리 시각장애인을 뜻합니다. 시각장애인은 모바일 기기가 나올 때마다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무선호출기에 뜨는 번호를 확인하지 못했고, 휴대전화 문자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시각장애인들은 항의했고 보완책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항상 한두 발이 늦었습니다.
그런데 아이폰 등장으로 한두 발 늦었던 시각장애인들의 IT생활은 확 바뀌게 됩니다. 문자메시지는 물론, 긴 문장과 미디어를 넣을 수 있는 메시지도 읽게 됐습니다. 그리고 전화통화중에 누구에게 전화가 왔는지, 누구에게 문자가 왔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IOS가 업그레이드 될 때마다 비장애인 아이폰 사용자들과 똑같이 가슴 설레합니다. 항상 모바일 생활에서 소외됐던 시각장애인들도 폰 고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나폰수> 진행자 중 한 명인 권순철씨의 말이다. <나폰수>에서 진행역을 맡고 있는 권씨는 인터넷방송 <라디오21>에서 '권순철의 흰지팡이 라디오'와 한국시각장애인인터넷방송에서 방송을 하고 있다.
어떻게 <나폰수>가 시작됐느냐는 질문에 숙명여자대학교 정책산업대학원 산하 웹발전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는 이제승씨는 이렇게 답했다.
"'스마트폰 세상'이라는 동호회 운영자로 활동하면서 회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건의가 바로 '동호회 차원에서 강의를 만들어 줄 수는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조금 망설였죠. 남들에게 강의할 정도로 고급 사용자도 아니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강의를 만들어 가야 할지도 막막했거든요.
그러다 아이폰 4S가 출시되면서 주변 지인들이 하나둘 4S를 구입하더군요. 구입에 관한 내용이며, 초기 사용상의 주의 점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아예 이런 내용을 정리해 처음 아이폰 사용하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망막함을 좀 덜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 세상' 세 명의 운영자들을 섭외해 한창 장안의 화제가 된 <나는 꼼수다>의 포맷을 차용한 <나폰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전형적인 강의 방식과는 다른 유익하고도 재미있는 정보 공유의 장를 만들고자 했죠."
진행자 네 사람은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권씨와 이씨 외에 전영세씨는 재즈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이고, 김동현씨는 IT업체에서 근무한다. 이들 네 사람에게 직접 궁금한 걸 물었다.
- 네 사람의 역할은 무엇인가.
권순철 : "저는 주로 프로그램 전체를 조율하고 있습니다. 농구로 말하면 포인트 가드가 되겠죠. 우리 동호회의 주운영자 영세형은 음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금 역할을 합니다. 말을 나름 재미있게 하려고 하지만 약간 어설프기도 하고, 가끔 이야기 안 할 때는 방송 분위기가 다운되기도 하지만 아이폰 초창기 사용자로서 숙련된 아이폰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방송의 중심, 농구로 말하면 센터를 맡고 있다고 봐야겠죠.
우리 방송의 활력소 김동현씨는 뭔가 투박하지만 오랫동안 프로그램 공부로 다져진 내공이 뛰어납니다. 알고 있는 걸 말로 표현하는 면이 부족하지만, 누구보다도 스마트폰 OS에 관한 디테일을 잘 알고 있는 기술자입니다. 농구로 말하면 슈팅가드 정도.
우리 방송의 뇌하수체 <나폰수>에서 이 사람이 빠지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제승형. 제승형은 우리 방송의 주 공격수입니다. IT분야 다방면으로 알고 있고, 방송 중후반부를 거의 책임지다시피 할 정도로 강의 솜씨가 뛰어납니다. 체력적인 문제 탓에 목소리가 작다는 지적이 있지만 해박한 지식으로 커버가 됩니다. 농구로 말하면 뛰어난 슈터겠죠. 이 네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나폰수>는 없어지고 말겁니다."
- 시각장애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권순철 : "지금까지 본 강의 2회가 진행되었고, 정기모임 때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던 공개방송 형태의 '질문과 답변, 팁 공유 시간' 등 해서 총 3회가 만들어진 상태입니다. 의외로 초기 반응은 괜찮은 상황입니다. 1, 2회 모두 다운로드 횟수가 100회를 넘어섰고 '지속적으로 청취하겠다' '기대된다'는 격려의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
의외로 간단하고도 쉽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다른 사용자 분들은 많이 어려워한다는 것, 저희가 말씀드리는 팁이 초보 사용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것들을 알게 되니 시작하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해 드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하기도 하네요."
- 시각장애인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영세 : "2009년 말에 우리나라에도 아이폰이란 괴물 휴대폰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온통 아이폰 열기로 가득할 때 우리 시각 장애인들은 그냥 그런 이야기가 있구나라는, 마치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생각했지요. 그러다 보이스오버라는 기능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 기능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아이폰을 사용한다고 해서 어쩌면 우리나라 언어도 지원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아이폰을 구입을 했었습니다. 역시나 우리나라 언어도 지원이 되더군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나는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나폰수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김동현 : "네 사람이 모두 시각장애인이다 보니 함께 모여 녹음하는 일이 제일 어렵습니다. 또 각자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녹음할 공간 섭외도 힘이들고... 그러나 우리를 기대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나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아이폰으로 시각장애인 스마트폰 접근성 늘어
- 향후 <나폰수>의 계획은?
권순철 : "<나폰수> 방송을 팟캐스트에 올릴까 생각 중입니다. 아직 운영자들과 합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은 시각장애인들이 아이폰을 쓰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앱 접근성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죠. 팟캐스트에 올려 많은 비장애인들에게 시각장애인들도 아이폰을 잘 쓰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앱 접근성도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앱 접근성을 알고 있음에도 무시하고 있는 대기업들에게도 뭔가 메시지를 주고 싶고요. 그래서 팟캐스트에 <나폰수>를 진출시키고 싶어요.
또 아이폰뿐 아니라 안드로이드폰도 다뤄야겠죠. 안드로이드폰을 다루기 위해 선행돼야 할 조건은 안드로이드 접근성이 시각장애인들이 쓸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갤럭시노트의 접근성은 그렇게 좋지 않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습니다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안드로이드 접근성도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안드로이드폰의 접근성이 좋아지면 <나폰수>는 안드로이드도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스마트폰 사용에 관한 강의와 더불어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우리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각종 이슈들(앱 접근성과 다른 스마트기기의 접근성 문제, 모바일 시대에 동참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기관들의 문제 등)에 관해 이야기하며 생각을 나누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시도라 생각합니다."
- 끝으로 시각장애인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김동현 : "먼저, <나폰수>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많은 분들께서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폰수> 진행자로 이 자리에 있지만, 저는 우리가 특별히 다른 시각장애인들보다 스마트폰을 더 잘 쓰는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조금 먼저 스마트폰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 지나고, 지금 청취자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폰 고수가 되셔서 또 다른 시각장애인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합니다."
전원 : "모두가 폰 고수가 되는 그날까지. 아자! 스마트폰 그까이꺼에 쫄지마! 씨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