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동주/제주장애인인권포럼 <헤드라인제주>
스마트 열풍이 불고 있다. 쏟아져 나오는 스마트 기기들과 이 스마트 기기들을 더욱 스마트하게 만들고 있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다.
방 한 구석에서 좁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스크탑 컴퓨터나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들의 생활 패턴의 변혁을 주도하며 개인 통신의 상징으로 군림해 왔던 휴대폰은 이제 구시대의 산물로 물러날 채비를 서둘러야 할 상황이다.
집, 학교, 직장 등의 물리적 환경 중심으로 사람들의 생활 동선이 결정되었던 방식을 뛰어넘어 이제는 사람 중심, 다시 말해서 내가 발이 닿는 바로 그 장소가 생활의 거점이 되는, 그야말로 진정한 동적 네트워크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 안의 PC', '똑똑한 휴대폰'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등장한 스마트 기기들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함은 물론 생활 전반에 걸쳐 편의를 극대화시켜 줌으로써 기존 라이프 스타일에 변화를 넘어 변혁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신속성과 편리성, 유용성을 기본으로 휴대의 편의성을 강점으로 갖는 스마트 기기의 특징이 단기간에 이러한 변혁을 주도할 수 있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급속한 변화와 변혁을 주도하고 있는 IT 기술의 발전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이 흐름을 같이 하지 못하여 대열에서 낙오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정보 소외 계층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는 장애인과 노인의 스마트폰 이용 현황만 봐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자료(2011년 기준)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스마트폰 이용률이 39.6% 수준인 반면 장애인은 8.6%, 장·노년층은 6.2% 수준으로 정보 생산과 소비의 비주류로서의 현 위치를 실감케 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21세기 지식사회, 정보화사회의 핵심인 '정보'의 생산과 소비에 있어 주류냐, 비주류냐의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나 역량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IT와 이에 파생된 다양한 기술들이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잡은 상태에서 좋든 싫든 생활 전반에 걸쳐 그 노출이 잦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정보소외나 정보비주류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듯하다.
신기술, 신제품에 열광하는 사회 분위기와 이를 선도하며 뒤는 돌아보지 않고 대책 없이 제품만 쏟아내고 있는 기업 행태에 오히려 경종을 울려야 하지 않을까 ...
얼마 전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스마트폰을 장만했는데, 우스운 사실은 다른 이들이 여러 회사의 다양한 제품을 두고 성능과 가격을 비교해 가며 제품 선택이라는 즐거운 갈등을 하는 동안 나는 성능도, 디자인도, 가격도 아닌 단 한 가지, '시각장애인이 이용 가능한지의 여부'만을 기준으로 고가의 스마트폰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한 고민은 제품 선택을 위한 것이 아닌 단지 스마트폰으로 갈아 탈 것인가, 아닌가가 전부였고, 스마트폰 사용을 결정한 순간 나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제품까지 결정되는 비정상적인 소비 행태로 이어지게 되었다. 당시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다시 말해서 음성을 지원해 주는 스마트폰이라고는 단 한 종류밖에 없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는 하나 소비 주체로서의 권리를 박탈 당했다는 허탈감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이는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판매했던 스마트 기기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 기능이 반영되지 않아 비롯된 문제로 국내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스마트 기기 가운데 미국의 애플사에서 내놓은 스마트 기기만이 장애인을 위한 편의 기능을 제대로 제공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이스오버(Voice-Over) 기능, 지체장애인을 위한 음성 명령 기능, 청각장애인을 위한 진동 사용자화 기능 등 장애 영역별 특성을 고려한 인터페이스를 직접 경험해 보면, 장애에 대한 기업의 이해와 높은 의식 수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일부 국내 기업들이 판매하는 스마트 기기들도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 하면서 서서히 장애인 편의 기능을 추가하고 있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로 실제 기능이 구현되어 장애인의 활용성이 높아질 때까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이제 이렇게 스마트 기기에 장애인 편의 기능이 잘 갖추어져 있기만 하면 장애인도 소비의 주체로서 권리를 보장 받으며 이른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까지는 아니더라도 스마트 시대에 최소한 정보 소외 계층이라는 불명예를 벗어 던질 수는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산 넘어 산이라고 스마트 기기 자체의 접근성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바로 스마트 기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접근성인데, 스마트 단말기에 장애인을 위한 기능이 탑재되었다고 하더라도 애플리케이션에서 그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거나, 애플리케이션 개발 자체에서 장애인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아 장애인에게는 무용지물인 애플리케이션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리케이션을 선택하는 것도 스마트 기기를 선택할 때와 마찬가지로 콘텐츠의 유용성보다는 접근 가능 여부를 보고 결정해야 할 판이니, 이런 코미디가 또 어디 있겠는가?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정보 소외 계층의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해 인터넷 공간에 도입된 '웹 접근성'이라는 개념이 부족하나마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정보통신의 트렌드가 스마트 기기 중심으로 흘러가는 현재 모습에 비추어 볼 때 '앱 접근성'도 '웹 접근성' 못지 않게 중요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발맞춰 행정안전부는 2011년 9월에 장애인과 고령자가 모바일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모바일 앱 접근성 지침'을 고시하였지만, 요즘 출시되고 있는 애플리케이션들을 보고 있자니 이 역시도 소 귀에 경 읽기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흔히들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의 성장과 성공의 비결로 '캐치업(catch-up)', 즉 '따라하기' 전략을 언급한다. 캐치업 전략은 후발주자가 선발주자(선진기업)를 따라잡기 위한 전략으로 2등 기업들이 1등 기업이 갔던 길을 재빠르게 쫓아가는, 모방 혹은 벤치마킹 전략이다. 국내 스마트 기기 및 관련 IT 기업들도 선진기업에 대한 캐치업 성공으로 현재 모습으로의 성장이 가능했는데, 한 가지, 이들이 캐치업에 실패(?)한 부분이 있으니, 바로 장애인에 대한 지원 기술이다.
애초부터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실패'가 아니라 '무관심'이 적절한 표현인 듯싶지만, 어쨌든 그렇게도 선진기업의 경영 전략을 따라해 왔으면서도 유독 장애인에 대한 배려나 지원 기술의 캐치업에는 인색하다 못해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국내 기업들의 한결같은 모습에 오히려 박수를 쳐 주고 싶을 따름이다.
그나마 과거에는 어느 정도 먹혀 들었던 '기술력이 없어서 ...', '비용이 많이 들어 수지가 맞지 않아서 ...', '잘 몰라서 ...' 등등의 변명들이 이제는 누가 봐도 비겁하고 궁색해 보일 만큼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성장하였으니, 이를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의식 수준을 보여야 마땅하다.
사회적 책임이다 뭐다 해서 기업들이 사회공헌을 한답시고 대놓고 기부를 하거나, 별도로 취약계층을 위한 사업을 벌이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데, 다 좋다. 아주 잘하는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다만, 그에 앞서 기업 본연의 역할, 즉 자신들이 생산하여 판매하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사회의 분리와 격차를 조장하는 한 어떠한 사회공헌도 가벼워 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양동주/제주장애인인권포럼 headlinejeju@headlineje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