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이 일반 기업(법인)까지 확대 시행됐지만, 기업 대부분이 웹접근성 준비에 소홀할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단체들은 빠른 시일 내에 실태조사를 거쳐 이를 공론화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자칫 대규모 소송전까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장차법에 따라 이날부터 모든 법인 사이트까지 웹접근성 준수가 의무화됐지만 아직 준비중이거나 손을 놓고 있는 기업이 적지 않아 법이 정착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장애인들의 웹접근성 준수 의무를 포함하고 있는 장차법은 올해부터 모든 법인 외에 100인 이하 교육시설과 입원 30인 이하 병원까지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장애인들은 현재 웹접근성 확보가 시급한 사이트로 금융권과 포털, 의료시설, 교육기관 등을 꼽고 있다. 하지만, 현재 준비중이거나 여전히 웹접근성 이슈를 알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특히 인증마크 획득만으로 웹접근성 준수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는 상황이어서 앞으로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은행, 보험 등 주요 금융권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웹접근성 인증마크' 획득 붐이 일었다.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민간 업체 중 하나인 웹와치가 공지한 인증사이트 현황에 따르면, 평소 15여건에 불과하던 인증이 지난달에만 30건, 이달에는 지난 10일 동안 부여된 인증마크가 28건에 달했다.
또 업계는 민간 기업들이 부여하고 있는 인증마크는 부여자에 따라 인증 수수료, 인증 마크, 인증 절차 등이 제각각이며, 아직 법적 효력이 없는 상황이어서 추후 웹접근성 준수 여부에서 얼마나 증거로 채택될지 모르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인증마크 획득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추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웹접근성 준수 의무를 다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증거'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동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팀장은 "웹접근성은 단기 사업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장애인들의 정보접근 격차를 해소하는데 투자, 노력해야하는 부분인데 대부분 인증마크 획득으로 모든 책임이 끝났다고 생각한다"며 "인증마크만 받고 이를 계속 모니터링, 관리하지 않는다면 웹접근성 준수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단체들은 이번 법 전면 시행과 함께 실태조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미 지난해 말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대한항공, 지하철공사 등 4개 기업을 대상으로 웹접근성 미흡을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시민단체측은 이 소송에서 일부 승소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수차례 서면 등을 통해 웹접근성 준수를 요구했으나 이를 기업들이 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인환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소송 이후 많은 기업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생각하고, 실제로 웹접근성 준수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당분간 추이를 지켜보면서 웹접근성이 소홀한 곳들을 대상으로 시정할 기회를 주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진정 또는 다른 방법들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재경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다음달까지 조사 기관을 정해 주요 기업들의 웹접근성 실태조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이후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웹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은 곳들을 대상으로 진정 또는 웹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이 당장 실태조사에 착수한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이를 소관하고 있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민간 기업들의 웹접근성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관계자는 "웹접근성은 전문적인 분야라 한국정보화진흥원쪽에서 담당하고 있고 매년 실태조사를 진행하지만 별도 정보를 공유하진 않는다"며 "이번 법 시행과 관련해 추후 연구조사기관을 선정, 모니터링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정보화진흥원에서 지난해 민간 기업 50여곳을 대상으로 시범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조만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지만 조사 대상 기업 대부분이 웹접근성 준수에 미흡하다.
업계는 정부가 정확한 실태파악을 통해 시정조치가 필요하거나 예산 등의 이유로 이를 시행하지 못하는 곳은 지원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홍보와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 활동가는 "법이 시행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웹접근성 준수에 대해 문의를 해오는 곳들이 많다"며 "법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 대대적인 홍보와 정보를 기업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다해, 장애인들이 정보접근에 차별 받지 않는 환경을 적극 만들어 줘야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