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법 시행 5년, 아직 갈 길 멀었다 <머니위크 2013.04.19>

 편의시설 등은 향상 불구, 정보 접근·의사 소통에 있어 차별 여전

까만 필름을 현상액에 담그면 순간순간 포착한 현실의 단면들이 드러난다. 이렇게 현실의 모습을 담은 필름에서 사진을 인화하려면 '필름 현상액'이 반드시 필요하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이러한 현상액에 비유될 수 있다. 사회곳곳에 존재하던 수많은 차별들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을 통해 비로소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장차법이 시행된 지 5년이 됐다. 지난 11일, 시행 다섯 돌을 맞은 장차법은 그동안 우리사회의 어떠한 차별요소를 투영해냈으며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켰을까.

<머니위크>는 장차법 제정을 위한 촉구운동부터 법 제정 이후 모니터링 및 차별 상담 등을 진행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박김영희 사무국장과 장애인 차별사례를 조사해온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1과의 조형석 기획조사팀장을 통해 장차법 시행 후 5년에 대한 평가 및 개선점을 짚어봤다.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1과 조형석 기획조사팀장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1과 조형석 기획조사팀장(사진_류승희 기자)


- 장차법 시행 이전과 이후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법 시행이 우리 사회 장애인 인권 개선을 위해 얼마나 기여한 것으로 평가하나.

▶조형석 조사팀장(이하 조)= 2007년 4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공포됐고 2008년 4월11일 시행됐다. 이후 5년간 국가인권위에는 5230건의 진정이 접수됐고, 1626건의 차별시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장차법 시행 이후 변한 게 별로 없다. 여전히 차별이 만연해 있다"는 호소도 여전히 많다. 이는 장차법이 '개인의 권리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권리 구제에서 더 나아가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제도를 구축하려면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박김영희 사무국장(이하 박김)= 아직 우리사회 곳곳에 장애인 차별이 존재하지만 장차법이 인권의식 향상에 기여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과거에는 장애인이 어떤 불편을 호소하면 정부기관조차 "참아라", "예산이 없다"는 답을 주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제는 법이 있으니까 개선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강해졌다. 무엇보다 장애인 스스로 차별 개선을 요구할 '권리'를 인식하게 됐다는 점이 큰 성과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사진_류승희 기자)


- 법 시행 후 5년 동안 5000건이 넘는 차별 진정이 접수됐는데, 장애인 차별이 가장 심각한 분야는 어디인가.

▶박김= 법 시행 이후 정부기관이나 공공편의시설 등에서 차별 요소가 많이 사라졌다. 건물에 장애인 화장실 설치가 확대됐고, 경사로 등도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형식적인 '법 지키기' 측면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고 해도 옛날식 수동 휠체어만 들어갈 수 있게 돼있어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경우 이용할 수 없다거나 화장실 손잡이가 고정돼있어 조절이 어려운 식이다. 또한 개인이 하는 영업점 등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접근이 쉽지 않다. 예컨대 식당에 갈 때 '무엇을 먹을까'보다 '들어갈 수 있는 곳인가'를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일상생활(사적 공간)에서의 보다 폭넓은 차별 개선이 요구된다.

▶조= 지난 5년간 장애차별 사건을 장애유형별로 분석해보면 시·청각 및 지적·발달장애인의 사건 비율이 43%였다. 시·청각 및 지적·발달 장애인의 비율은 전체 등록 장애인 중 약 27%에 불과한데, 장애차별비율은 유독 높은 것이다. 장차법 시행 후 지체장애인을 위한 시설의 접근성 등은 눈에 띄게 향상됐으나, 시·청각 및 지적·발달장애인을 위한 정보접근, 의사소통 영역에서의 차별 개선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어디까지 정당한 편의가 제공돼야 하나'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조차 미흡한 실정이다.
 
- 장차법이 더욱 실효성 있는 제도로 정착되기 위해 개선돼야 할 점은.

▶조= 장차법은 '정당한 편의' 제공 등을 포괄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많다. 구체적인 기준 정립 등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또한 건물에 경사로를 설치하려 해도 도로교통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는 등 법과 법의 상충 우려도 있다. 관련 법령의 정비가 시급하다.

▶박김= 범사회적인 인식의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 장차법은 비단 장애인들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요즘 고령화가 화두인데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심신의 장애를 가질 수 있다. 학교를 가든 회사를 가든 또는 일상 어디에서든 장애인이 차별 없이 동등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결국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편리한 사회를 구축하는 길이 될 것이다.

 


■장차법 5년… 진정건수 '10배 증가' 
 
'월 평균 8.5건→92.2건'.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총 5230건의 장애 관련 진정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법 시행 이전에는 월 평균 8.5건이 접수됐으나, 법 시행 이후에는 월평균 92.2건이 접수돼 10배가량 급증한 것이다. 장차법이 장애인 인권의식을 높이는 데 기폭제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기간 전체 5230건 중 인권위 조사대상 사건은 2385건이었으며, 이중 1626건(68.2%)의 권리구제가 이뤄졌다.

차별영역별 장애차별 진정사건 접수현황-재화,용역의 제공 및 이용63.5%, 사법행정/참정권6%, 괴롭힘 등10.3%, 고용6.5%, 교육6.2%, 기타7.6%
 

장애차별 사건을 장애유형별로 분석해보면 지체 장애인 사건이 1657건(31.7%)으로 가장 많았고 ▲시각장애인 937건(17.9%) ▲지적·발달장애인 725건(13.9%) ▲기타 장애유형(내부기관장애·안면장애 등) 679건(13%) ▲청각장애인 580건(11.1%) ▲뇌병변장애인 384건(7.3%) 순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지적·발달장애인 사건의 경우 전체 장애유형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3.9%에 불과하지만 ▲2008년 29건 ▲2009년 70건 ▲2010년 181건 ▲2011년 214건 ▲2012년 231건으로 매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장애를 이유로 대출을 거부당했다거나 놀이시설·식당 등 특정시설의 이용을 거절당했다는 사례가 주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