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당사자가 말하는 '장차법' 시행 5년 <에이블뉴스 2013.04.10>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 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법의 존재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해 1년 동안 24시간 활동지원제도미시행으로 인한 참사, 지적장애 여성 집단 성폭행, 총선에서의 시설 장애인들 무더기 대리투표 등 인권침해도 여전히 ing,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하지만 장차법이 과연 ‘갈 길’만 먼 제도일까. 시행 이후 5년 동안 진정건수가 10배 증가하는 등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수면위로 드러났다. 장차법이 장애인의 삶을 바꾼, 삶의 모토가 됐다는 당사자들의 희망을 10일 서울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3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5주년 성과와 평가 토론회’에서 들을 수 있었다.

10일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5주년 성과와 평가 토론회'에서의 시각장애인 김신지씨 모습.ⓒ에이블뉴스  10일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5주년 성과와 평가 토론회'에서의 시각장애인 김신지씨 모습.ⓒ에이블뉴스

■시설에 호소하던 내 모습 ‘전세역전’=시각장애인 김신지(시각장애1급, 28세)씨는 장차법을 “내 삶의 응원군”이라고 표현했다. 이날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 강단에 올라선 김씨는 사뭇 긴장된 모습이었다.

2004년 수능을 봤다던 김 씨는 기억을 떠올리며 “친한 선배가 학습 방식에서의 소외를 받게 되다 보니 고등학교 졸업 후 진학에 실패하고 집에 있었다. 내 미래를 보는 듯 아팠다”며 “수능에서의 저시력 장애인의 경우, 20분의 추가시험 시간과 확대시험지, 전맹인 경우 1.5배의 시험시간과 점자시험지, 음성자료가 주어지지만 내게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 학교 때 중도실명 당한 김씨로서는 점자를 읽지 못해 전맹 수험생 기준으로 볼 수 없었고, 저시력 기준 확대시험지로는 읽는 속도가 매우 느려, 어느 하나 제대로 된 배려를 받지 못한 것. 하지만 교육청에서는 그녀의 음성자료와 확대시험지 요청을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담임선생님의 열띤 도움으로 음성 테이프를 제공받는 ‘절반의 성공’을 해냈다.

김 씨는 “어렵게 수능을 봐서 대학에 갔지만 그곳에서도 배려는 없었다. 중증 시각장애인을 받아들인 전례가 없던 학교는 선수강제도, 대독, 대필을 요구하는 나를 생소해했다. 수능시험도 그렇고 학교에 요청했던 것들은 할 수 없는 게 아니었다”며 “나는 못해줄 것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장차법이 시행된 2008년 이후, 신지씨도 달라졌다. 집 근처 체육시설을 다녀보려고 했지만, 시설 쪽에서는 시각장애인을 받아본 적도 없고, 향후 다시 올 것이 아니기에 편의 개선을 할 생각이 없자 소송까지 진행한 것.

김씨는 “장차법이 시행되고 당당하게 그분들에게 법령을 지켜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고, 소송까지 갔다”며 “시설에 편의를 호소했던 나한테 그 시설로부터 개인적으로 접촉해서 소송을 취하하려는 시도를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말 그대로 전세역전 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장차법 제정은 내게 사고의 전환을 선물했다. 기관이나 시설에 마땅한 이유가 있다면 당연하게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이라며 “법이 있지만 여전히 법을 지키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긴 하지만, 장차법은 정말 소중한 법”이라고 덧붙였다.

10일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5주년 성과와 평가 토론회'에 참석한 함효숙씨.ⓒ에이블뉴스  10일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5주년 성과와 평가 토론회'에 참석한 함효숙씨.ⓒ에이블뉴스

■“장차법 시행 전후, 피부로 느껴져”=청각장애인 함효숙(청각장애1급, 43세)도 마찬가지였다. 수화를 한다는 이유로 이상한 시선과 의사소통의 부재로 세상을 살아가기 쉽지 않아 남몰래 울어야만 했다.

이날 함씨는 수화를 통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수화로 대화하면 이상하게 바라보고 흉내도 냈다. 자신감이 떨어지다 보니 수화로 대화도 제대로 안 되더라”며 “어느 날은 청각장애인도 공부할 수 있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능력이 없거나 일상적인 과업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털어놨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통합교육으로 일주일간 일반학교에서 수업을 들었지만, 선생님이 수화를 할 줄 몰라, 수업내용을 듣지 못하고 일주일간 답답함을 느껴야 했을 뿐 더러, 쉬는 시간에도 외톨이로 지낼 수 밖에 없던 것.

함씨는 “직장에 들어가 회의를 할 때나 행사 때 수화통역을 안해줬다. 멍하니 있다가 그냥 따라갔으며, 주변인들은 법원과 경찰서에서 의사소통이 안 돼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했다”며 “법 시행 이전에는 불편해도 불편하다 못했고, 권리가 침해받아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2008년 장차법 시행 이후, 여전히 이상한 시선은 있지만, ‘수화는 언어’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돼가고 있다는 것이 함씨의 소감. 함씨는 “직장생활에서 중요한 회의 때는 지원해줘 답답함이 많이 줄었다. 관공서도 수화통역서비스를 많이해주고 있다”며 “최근에는 고궁에서 통역서비스를 받아 기분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함씨는 “장차법이 청각장애인의 차별을 제거하는데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5년 동안 많이 바뀌었다.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해졌다는 것과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등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특수학교 수화통역, 장애인 영화관람권 등이 개선돼야 하는 사항이 있다. 권리 침해를 줄이고, 불편함을 앞으로 계속 고쳐나가는 것이 장차법 제정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